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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lesson

이현우 “N잡, 낭만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토익이 만난 N잡러 ③


서울 을지로3가역 부근 후미진 골목 안에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와인바가 있다. 열 명의 사장이 월급의 10%를 모아 만든 ‘십 분의 일’.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열 명의 청년들은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사장으로 일하며 따로 또 함께 ‘십 분의 일’을 운영해 왔다. 2016년 말,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기 직전에 문을 연 ‘십 분의 일’은 주말이면 줄 서는 사람들이 가득한 을지로의 명소가 되었고, 어느덧 창업 5년 차를 맞았다. 지난 5년간 '십 분의 일' 대표이자 N잡러로 일해온 이현우 대표를 만나 창업 스토리, N잡러로 일하는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글/사진: 최진영



새로운 형태의 경제 공동체 '십 분의 일'




‘어떤 걸 하는 게 좋을까?’ 친구들과 함께 창업을 준비하면서 이현우 대표는 생각했다. 비교적 빨리,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는 일, 그러나 흔하지 않은 이른바 ‘블루오션’을 찾는 과정에서 ‘와인바’를 떠올렸고, 수중에 있는 창업비용으로 차릴 수 있는 최적의 지역, 을지로에 안착했다.


절친한 친구도 관계가 틀어질까 봐 잘 하지 않는 게 동업인데 돈이 엮인 열 명의 사장과 어떻게 의견을 조율해서 하나의 사업체를 꾸려갈 수 있었을까. 이현우 대표는 창업의 첫 번째 목적이 수익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와인바를 차려서 돈을 벌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예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고, 커뮤니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우리만의 장소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장소를 유지하려면 수익을 내야 했고요.”


이현우 대표는 '십 분의 일'에서 자칭 ‘바지사장’을 담당하고 있다. 직장과 겸업하던 다른 사장들과 달리 드라마 PD로 일하다 퇴사한 그가 자연스럽게 ‘십 분의 일’ 운영을 도맡았다. 흡사 실험처럼 시작된 ‘십 분의 일’은 이른바 ‘대박’을 쳐 주말이면 손님들이 줄을 서는 을지로의 명소가 되었고, 열 명의 사장에게 배당금과 복리 후생을 줄 정도로 성장했다. '십 분의 일'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이현우 대표는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했고, 3년여 전부터 '십 분의 일' 운영 외의 다른 일을 하며 N잡 실험을 계속해 왔다.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알게 됐어요"

“처음부터 N잡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N잡러가 됐어요. 자영업이라는게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다른 일을 찾게 되더라고요. ‘십 분의 일’이 안정적으로 운영된 이후, 2018년부터는 다른 일도 해봐야겠다 싶어서 생계형 N잡러가 됐죠."


자영업을 하면서 얻은 수확 중 하나는 ‘새로운 정보’다. 이현우 대표는 ‘십 분의 일’을 운영하며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서울의 다른 지역에 또 다른 매장을 내는가 하면 전혀 다른 분야의 새로운 일도 시도했다. '자영업이니까, 직장인보다는 더 벌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그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끌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도전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에어비앤비를 하기도 했어요. ‘십 분의 일’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분과 새로운 공간을 찾아 운영하기도 했고요. 그밖에도 여러가지 일을 시도했는데요. 결정적으로 『십 분의 일을 냅니다』라는 책을 내면서 더 다양하게 일하게 된 거 같아요”


요즘 이현우 대표는 ‘십 분의 일’로 자유롭게 출근한다. 의무적으로 나와야 하는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출근일을 선택할 수 있다. 안정적으로 운영해주는 직원들 덕분이다. ‘십 분의 일’로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주로 서대문구 사회적기업지원센터에서 소설벤처를 돕는 멘토로 일한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서대문구 사회적기업지원센터로 매일 출근했어요. 지금은 출퇴근하지는 않고 회의가 있으면 가는 방식으로 계약직 공무원 또는 프리랜서처럼 일하고 있고요. "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일을 동시에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혼란은 없을까. 이현우 대표는 부가수익이 생기고 여러 개의 일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면서 욕심을 낼수록 삶이 산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재밌어 보이는 일은 다 했던 것 같아요. 다 경험이라는 생각으로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까 재미있다고 무조건 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N잡러로 살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나를 알게 된 것이다. 일의 우선순위가 세워지면서 이현우 대표는 산만했던 삶을 하나둘 정리할 수 있었고, 자신이 어떤 일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사람을 만나서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은 이현우 대표가 찾은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었다.





안 되도 괜찮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기

어떤 사람에게 N잡러가 맞을까. 이현우 대표는 ‘피곤함을 감수하더라도 풍요롭게 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물질적 풍요만 뜻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관계를 넓히고 자신을 확장하다 보면 삶이 보다 풍요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N잡러로 살면서 고민이 많을 때 선배 N잡러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혼란이나 산만함, 스트레스를 느낄 때 어떻게 하냐고요.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게 된다는 명언을 남겨주셨죠.”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 N잡의 풍요로움만 보고 또는 회사 생활에 싫증이 나서 무작정 N잡러가 되겠다고 뛰어든다면 실패는 예정돼 있다. 특히 ‘십 분의 일’의 사장들처럼 직장을 다니면서 또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면 명심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대박을 꿈꾸지 않는 것’이다.


“무리하게 창업에 뛰어들면 너무 큰일이 돼버려요. 좋아하는 것으로 시작하되 낭만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안 돼도 괜찮다는 생각으로요. 그래야 모든 과정이 재미있을 수 있어요.”


올여름, 이현우 대표는 또 하나의 일을 시작했다. ‘십 분의 일’을 창업할 때부터 꿈꿨던 ‘드라마 작가’로의 첫발을 뗀 것이다.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작가교육원을 다니며 드라마 대본을 쓰는 수업을 들었고, 우연한 기회로 내년 6월에 무대에 올라갈 연극 대본을 맡았다.


“’십 분의 일’에서 연극하는 분들을 알게 됐어요. 우연한 기회로 드라마 작가라는 제 꿈을 연극하는 분들과 공유할 수 있었고, 연극 대본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게 됐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게 N잡의 장점이기도 해요”


이현우 대표에겐 또 어떤 새로운 일과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드라마 작가'라는 이름으로 수렴될 때까지, 지난 5년 여간 계속해 온 그의 N잡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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