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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lesson

홍진아 “N잡러는 더 많이 기록하고 설명하는 사람”

- 토익이 만난 N잡러 ③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두 개의 직장에서 일했다. '프리랜서', '투잡'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일. ‘어디에서 일하는 누구입니다‘라는 말 대신 ‘내 일을 정의하는 사람은 나’라는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이 필요했고, 모든 숫자를 넣을 수 있는 알파벳 ‘N’을 사용해 ‘N잡러’를 만들었다. 2017년 3월, N잡러라는 신조어를 만든 후 지금까지 ‘프로N잡러’로 살아가는 홍진아 매니저의 이야기다. 3개월 전 재단법인 카카오임팩트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일을 시작한 홍진아 매니저를 만나 지난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글: 최진영 /  사진 제공: 홍진아





“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시기, 새로운 표현이 필요했어요”


“N잡러가 포털 사이트 어학 사전에 등록됐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문법에 맞지 않는 이상한 단어인데 널리 쓰이고 사전에 등록된 걸 보면서 정말 신기했어요.”


N잡러라는 말이 탄생하기 직전인 2016년 말, 각종 매체에서 퇴사 관련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방식으로 퇴사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흘렀고, 퇴사를 보는 관점이 ‘실패’나 ‘끈기 없음’에서 ‘기회’이자 ‘또 다른 시작’으로 변화했다.


“지금 돌아보면 제가 처음 N잡러라는 말을 만들었을 때가 일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 변화를 표현할 단어들이 필요했고, 그중 하나가 퇴사였다고 생각하고요. 저도 그런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내가 하는 일을 새롭게 표현하고 싶어서 고민하던 중에 ‘N잡러’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2017년 3월, 홍진아 매니저는 두 곳의 회사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N잡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 싶었고, 화, 수, 금요일은 민주주의 확산 활동을 하는 협동조합 ‘빠띠’에서,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조직 문화를 연구하는 경영컨설팅 회사 ‘진저티 프로젝트’에서 콘텐츠 매니저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일했다. 동시에 소셜 투자 계모임 ‘디모스’와 2030 여성 기획자를 대상으로 하는 네트워킹 프로그램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를 만들었고, 2018년 가을에는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랩 ‘빌라선샤인’을 설립하며 N잡러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빌라선샤인을 만들고 총 여섯 번의 시즌을 진행했어요. 사람을 모아야 하는 사업의 특성상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질수록 운영하기 어렵더라고요. 작년 겨울에 정리하고 6개월 정도 쉬다가 3개월 전부터 카카오임팩트에서 일하고 있어요.”



여러 프로젝트를 잘하는 법? ‘작은 목표 세우기’

현재 판교에 있는 카카오임팩트로 주5일 출근하고 있지만, N잡러라는 정체성을 잃은 건 아니다.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정치/사회 이슈에 관심 있는 여성들과 함께하는 소셜 네트워킹 프로그램 ‘정치 이야기하는 여자들’을 운영한다.


“정치나 사회 이슈에 관심 있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야기할 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2주에 한 번씩 만나서 이야기할 사람을 모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모이더라고요.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요. 9월부터는 우리끼리 즐겁게 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서 바깥으로 내보자는 의견이 나와서 뉴스레터나 팟캐스트를 만들 예정이고요”


공통의 관심사로 사람을 모으고 함께 하는 일은 홍진아 매니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홍진아 일 잘하지’라는 말보다 ‘저 팀 일 잘한다’라는 말이 더 좋은 사람. 홍진아가 끊임없이 사람을 모으고 네트워킹에 힘쓰는 이유다.


“새로운 활동을 기획할 때는 친한 사람 중에 같이할 만한 사람 2명을 찾는 게 중요해요. 2명만 찾으면 나까지 총 3명이 되잖아요. 3명을 모은 다음 SNS에 ‘우리 이런 거 할 건데 같이할 사람?’하고 올리면 자연스럽게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요”


작은 목표 세우기는 홍진아 매니저가 사람을 모으고 네트워킹할 때 잊지 않는 핵심 포인트다. 최소 기간은 3개월. 3명이 한 달에 두 번씩 총 3개월 모이면 이 모임은 성공한 셈. 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은 뒤 새로운 시도를 늘려나가야 한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미래에 대한 동기와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는 한 번의 사이클을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해요. 이걸 경험하고 나면 더 할지, 말지도 결정되거든요. 간혹 저한테 ‘하는 것마다 잘되는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생각보다 사람이 모이지 않아서 시작하지 못한 것도 있고, 시작했는데 생각과 달라서 중단했던 것도 많아요."


사회초년생에게 N잡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

누구나 N잡러라는 말을 쓰는 시대가 됐지만, N잡러가 되기는 여전히 녹록지 않다. N잡러에 대한 높은 관심과 달리 N잡러와 일할 준비를 끝낸 회사가 드물기 때문이다. 개인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회. 홍진아 매니저는 N잡러가 되기 전 고려해야 할 요소, N잡러로 일할 때 꼼꼼히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두 곳의 회사랑 똑같이 계약할 수는 없어요. 아직 우리나라 법에서는 겸업을 금지하고 있거든요. 저는 한 회사와는 정규직으로 계약하고 다른 회사와는 사업 소득자로 계약했어요. 휴가나 복지 같은 것도 애매할 때가 많은데요. 이런 특수성을 고려해야 해요. 연봉이나 계약 형태처럼 중요한 내용은 명문화해야 하고요. 앞으로 고용 형태가 다양해져서 N잡에 대한 인식 바뀌면 기업들도 달라지겠죠. 그렇게 변할 수 있도록 N잡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많은 수입원이 있는 사람이 아닌 자기 일을 스스로 정의하고 일의 기준을 세우는 사람이 N잡러라면, N잡러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 내 일을 정의하고 기준을 세우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일, N잡러로 일할 때 꼭 필요한 자질을 물었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지 알아야 해요. 어떤 환경에서 최상의 능력을 내는지, 어떤 스타일로 일하고, 무엇을 빨리하고 무엇을 느리게 하는지 알아야 잘 할 수 있어요. 사회초년생에게는 N잡러를 권하지 않는 편인데요. 꼭 회사에 다니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고 일해본 경험이 있어야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알 수 있거든요.”

N잡러 탄생 5주년, 이제 새로운 질문을 해야 할 때

N잡러라는 특수한 정체성을 타인과 기업에 설명하기 위해 홍진아 매니저는 끊임없이 자기 일을 기록하고 정리해왔다. 꾸준함이 없다는 이유로 전문성을 의심하거나 N잡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커리어를 낯설어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해왔으며, 어떤 일을 잘하는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가를 정리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OO 회사 10년 차 마케터입니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이 정리해주는 정보가 있잖아요. 편리하죠. 그런데 N잡러의 일은 이런 통상적인 표현으로 간단하고 편리하게 설명할 수 없어요. 어쩌면 당연한 거죠. ‘이걸 일일이 설명해야 하나?’, ‘왜 사람들이 N잡 이해 못 하지?’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지난 5월, 홍진아 매니저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N잡러의 바구니’라는 매거진을 만들었다. N잡러 탄생 5주년을 앞두고 그간 해온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회사 이름이 나를 대표하는 게 싫어 N잡을 택했다면, N에 들어가는 나의 일을 설명하기 위해 기록은 필수. N잡러는 더 많이 설명하고 기록하는 사람, 끊임 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업데이트하는 사람이다.


“예전부터 저를 지켜보신 분이 그동안 몇 개의 일을 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몇 개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올해가 가기 전에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을 글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해서 ‘N잡러의 바구니’라는 매거진을 만들었어요. '내 바구니 안에 넣을 일은 내가 정한다'라는 생각으로 했던 일이 몇 개인지 정리해 보려고요.”


‘N잡러의 바구니’에 차곡차곡 이야기가 쌓이고 홍진아 매니저가 해온 일들이 정리되는 2022년 즈음에는 ‘프로N잡러 홍진아’ 인생의 2막이 열리지 않을까. 그간 ‘왜 하나의 직장에서 일해야 하는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N잡러가 필요한 이유, 누구나 N잡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왔다면 이제 ‘N잡러가 어려움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질 차례. 이른바 ‘Beyond N잡러’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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