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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영어 글쓰기와 영어 교육에 대한 소고

이석재(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한국영어교육학회 前 부회장

영어교육 전문가들은 “국내 영어교육 상황이 듣기/읽기에 치우쳐 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방책으로 ‘영어 말하기’에 몰두하는 최근의 학습 분위기에도 우려를 표한다. 특히 영어 글쓰기 교육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재 교육 분위기가 한국 영어교육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대학 강단에서 영어 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이석재(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한국영어교육학회 前 부회장)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교육부에서는 영어 교과 과정의 목표를 ‘영어 의사소통 능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길러주고 국제적 안목과 세계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공교육 과정의 총괄 목표라는 점을 고려해도 거창하다. 과연 국내 영어 학습자들은 교육부의 목표에 맞춰 공부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영어교육은 듣기/읽기에 치우쳐 왔다. 이러한 교육 환경은 학습자들이 영어 말하기/쓰기 능력을 외면하게 했고, 영어 능력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국내 영어 학습자들이 듣기/읽기 능력, 즉 언어의 ‘수용 능력’은 뛰어나지만, 말하기/쓰기에 해당하는 표현 능력은 낮은 수준을 맴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영어 글쓰기는 국내 영어 학습자들이 골머리를 앓 고 있는 영역이다. 영어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 식하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영어로 글을 쓰는 일은 드물 어서 학습자들의 의욕을 떨어트린다. 듣기/읽기보다 학 습 환경도 열악하여 영어 글쓰기에 관해 체계적으로 배 우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돼 학습 효과 도 더디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국내 영어 학습자들은 영어 글쓰기 능력을 어 떻게 키울 수 있을까? 총체적 영어 능력을 파악하고, 그 에 맞는 방법으로 시작하자. 초급자라면 ‘한 문장 완성하 기’를 목표로 문장의 뼈대를 만드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 시 말하면 문장을 구성하는 기본 문법을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이어 중급자가 되면 ‘한 문단 만들기’로 이동하고 고급자 수준에서는 ‘문단 연결하기’로 확장해 가는 것이 좋다. ‘좋은 글’은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간의 연결이 논리적이고 응집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초급자라면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문법에 초점을 두고, 중고급자 는 단순 영어 학습을 넘어 사고의 논리성을 높이는 한편, 수사학적인 능력을 배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쓰기’ 외에 다른 영역의 학습을 병행하는 것도 영어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이다.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언어의 통합적 속성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언어의 네 가지 영역(듣기/읽기/말하기/쓰기)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는데 이를 언어의 ‘통합적 속성’이라 한다. 영어 학습자들은 언어의 통합적 속성을 유념하고 듣기에서 쓰기 순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듣기/읽기/말하기/쓰기 영역을 균형 있게 학습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쓴 글을 직접 소리 내 읽어 보면 좋다. 영어는 학문이라기보다 연습의 대상이다. 많이 읽고, 듣고, 말하고, 쓰면서 영어 실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 충분히 연습했다면 다음은 실력을 점검할 차례다. 공신력 있는 시험을 통해 현 학습법의 효용을 점검하고 향후 학습 수준과 계획을 세우자. 목표와 기준이 명확할수록 성과도 뚜렷해지는 법이다. 시험의 순기능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글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글과 사실을 기술하는 글은 다르다. 목적에 따라 어휘와 표현, 문체와 수사를 다르게 써야 한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최근에는 특정 직무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영어 학습을 연결해 교육하는 특수목적영어(English for Specific Purposes: ESP)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이는 언어를 더욱 효과적으로 가르치려는 시도 중 하나다. 이처럼 자신의 직무와 관련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영어를 학습하면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오락가락하는 영어 교육정책부터 AI 자동번역기의 등장, 스펙 쌓기식 영어교육 등으로 한국 영어 교육계가 신음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의 소통 환경이 무너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리지만, 영어의 효용성은 여전히 막강하다. 인터넷에서 쓰이는 언어의 절반 이상이 영어이고 과학기술 정보의 95% 이상도 영어로 되어 있으며 전 세계 교역의 75%가량이 영어로 이뤄진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금처럼 영어를 학습할 수는 없다. 한 언어를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 단적인 언어 표현을 공부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언어에는 사고와 문화뿐만 아니라 시대의 정신과 삶까지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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